본문 바로가기
일상 기록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 17] 리뷰: 죽음과 삶의 연속성에 대한 질문 (스포O)

by 글쓰기 파트너 2025. 3. 2.
반응형

오랜만에 극장에서 본 영화 미키17은 죽음과 삶의 연속성을 흥미롭게 다룬 작품이었다. 곳곳에서 서사의 공백이 느껴졌음에도 불구하고 로버트 패틴슨의 연기 덕분에 끝까지 몰입해서 볼 수 있었다.

 

 

로버트 패틴슨이 연기한 주인공 미키는 빚을 갚지 않으면 자신을 죽일 사채업자를 피해 지구를 떠나기 위해 익스펜더블(Expendable) 업무로 자원한다. 알지 못하고 자원했으나, 사실 익스펜더블은 백신을 개발하기 위한 인체 실험이나 각종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는 일을 도맡아 자주 죽음 앞에 서게 되지만 죽어도 다시 새로운 신체로 무한정 프린트되어 기억을 심어져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여기서 Expendable은 "소모용의" 라는 뜻을 가진 영어인데, 쉽게 대체될 수 있으므로 저장이나 보관할 필요가 없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미키는 그러한 소모품 인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반응형

 

🔄 죽음이 반복되는 세계, 인간성은 어디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영화의 첫 장면은 미키17이 죽을 뻔한 위기에서 살아남은 채 깨어났는데, 친구 티모가 살아남은 미키17을 발견하고 "죽는 건 어떤 기분이야?"라고 물으며, "(어차피 프린트되면 되니) 구해주지 않아도 괜찮지?"라며 살려주지 않고 화염방사기만 가져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이 장면은 익스펜더블로서 수많은 죽음(인체 실험을 위해 단 15분만 살아있던 미키도 있었다) 후 반복하여 살아난 미키의 삶이 비춰지고 나서 다시 반복되는데, 관객으로서 처음 볼 때와 다시 볼 때의 감정이 달라지는 경험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처음에는 미키를 구해주지 않는 티모가 몹시도 비인간적으로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미키의 죽음은 점점 더 가벼워지고 무의미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아 두 번째 볼 때는 티모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가 이해가 되어서이다. 영화 내 사람들 뿐만 아니라 관객마저 이제는 미키가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실험체 같은 존재로 취급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기막힌 연출이었다. '죽기'를 선택하지 않고 단순 '익스펜더블'이라는 직업을 선택했을 미키는 이제 AI 로봇처럼 느껴질 정도였고, 단지 복제된다는 이유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 미키17과 18, 그리고 자아의 연속성

 

미키17과 미키18이 마주하는 순간, 이들은 같은 자아일까? 영화는 이 질문을 던지며 관객을 깊은 고민에 빠뜨린다. 이전의 미키1, 2, 3, 4...는 정말 같은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단순히 기억을 공유한 또 다른 개체일 뿐일까? 미키18을 바라보는 미키17의 시선을 통해, 그는 더 이상 자신이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미키18이 이어지는 것 같아 이 다음의 죽음은 진정한 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미키는 멀티플(미키17과 18이 공존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 되기 전까지는 자신이 이어진다고 생각했기에 죽음이 여전히 무섭지만 새롭게 프린트된 미키가 자신이라고 생각했었다. 왜 또다른 자신을 앞에서 보니 자신의 삶이 더이상 복제될 수 없다고 생각했을까? 17-18이 다른 가장 큰 이유는 각자의 삶이 생기면서 서로 공유하지 않는 다른 기억들과 생각들인데, 그 때문에 자아가 분리되는 걸까?

 

미키1, 2, 3, 4...는 기억의 흐름이 일치하기 때문에 모두 같은 사람이었을까? 혹은 한 사람의 다중 우주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점에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처럼, 한 사람이 살 수 있는 다양한 우주를 끊어 끊어 익스펜더블의 형태로 이어붙어진 개념처럼 생각되었다. 그걸 우리는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익스펜더블'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것 자체가 '몸이 똑같고 기억이 이식되면 같은 사람이다'라는 전제 하에 이루어진 건데, 그 전제가 애초에 틀렸다면? 사실 미키1은 죽었고 미키2는 그저 기억을 이식 받고 몸이 다른 다른 사람이라면 (실제로 그러할 것이고) 모든 미키는 살해 당한 것이다. 거짓 명제를 믿게 되면 살인이 정당화되고 죄의식이 없어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잔혹하고 충격적인가.

 

 

🎭 로버트 패틴슨의 연기력, 그리고 캐릭터들

 

로버트 패틴슨의 연기는 정말 대단했다. 미키17과 미키18을 완전히 다르게 연기해냈고, 디너 장면에서 미키18이 미키17이 받은 대우에 분노하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특히 그의 얇고 힘없고 음치 같은 목소리 연출이 독특하고 매력적이었는데, 잘생긴 배우를 잘 안 생기게 보이게 만든달까, 부족한 인간처럼 보이게 하여 그를 더 '익스펜더블'처럼 표현해낸 것이 놀라웠다. 영화의 여러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기 덕분에 끝까지 몰입해서 볼 수 있었다.

 

케네스 마샬과 일파 마샬 부부도 흥미로운 캐릭터였고 그들의 연기 또한 영화의 재미 요소 중 하나다. 일파 마샬이 소스에 집착하는 설정, 케네스 마샬이 아내에게 의존하여 모든 결정을 검사 받는 설정은 흥미로웠다. 다만 그들의 캐릭터에는 서사가 부족하여 어떤 깊은 의미가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후반부에 일파는 새끼 크리퍼의 꼬리를 잘라 갈아 새로운 소스를 만드는데, 그걸 케네스에게 먹어보라고 하고 케네스는 살짝 마신 후 더 이상 손 대지 않는다. 소스는 힘이 약한 자들(혹은 국민)을 착취하는 고위급(정치인)의 악질과 불필요한 사치를 의미하는데, 그러기에는 케네스는 이 소스를 즐기지 않는 것으로 보이고 피로 만들어진 소스를 보며 신나하는 일파가 사이코패스처럼 보여 괴상하기 짝이 없다. 일파가 오히려 정상적으로 묘사되었다면 그들의 지위와 권력을 남용한 모습이 더 악하게 비추어졌을 텐데, 비정상인 사람들이다 보니 조금 덜 악역 같이 보인달까. 하긴 전자였다면 뻔하고 흔한 설정이었겠지만 후자였기에 더 특이하다고 생각되었을지도 모르겠다.

 

 

 

 

 

🤔 부족한 서사와 납득되지 않는 전개

아쉬운 점도 많았다.

  • 체위 표현이 후반부 'bring the baby'와 연결되는 장면은 너무 직설적이고 삼류적인 느낌이었으며, 더 심오한 언어적 장치가 있었다면 영화의 깊이가 더욱 살았을 것 같다.
  • 마약 같은 '옥시소졸'이 나온 이유나, 카이가 등장한 이유가 명확하지 않았다.
  • 나샤 역시 처음에는 배신할 것 같은 캐릭터로 보였지만, 끝까지 선한 인물로 남아 의외의 전개를 보였다. 다만 나샤는 사회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정치로 진출한 건강한 캐릭터로 그려졌는데, 여성이 힘 있는 캐릭터로, 주인공인 남성이 순응적인 캐릭터로 그려진 것 또한 의외성이 있어서 좋았다.
  • 크리퍼의 거짓말로 인해 케네스 마샬이 죽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서사였지만, 미키18이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 특히 미키18이 삶에 극도로 집착하면서도 마지막에 자폭을 선택하는 과정이 논리적으로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았다.
  • 제니퍼의 죽음이 있었기에 사실상 인간 측에서도 희생자가 있었는데 (물론 크리퍼가 죽이지는 않았어도... 미키18과 케네스 마샬도 크리퍼가 죽인 것은 아니지 않은가), 굳이 또 다른 희생이 필요했던 점도, 그에 대해 아무런 반항 없이 순응했던 인간의 행보도 이해되지 않았다.
  • 결국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하라는 크리퍼가 과연 선한 존재인가, 에 대해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단지 미키17을 구해줬다는 이유로 크리퍼를 온전한 '선'으로 간주하는 것에 있어서 굉장한 생략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부족한 서사로 인해 이 영화의 완성도나 깊이는 굉장히 약해졌다고 생각한다. 원작 소설에서는 이렇게 생략된 서사들이 보다 구체적으로 묘사되었을지 궁금하다.

 

 

✍️ 총평: 기억이 이어진다고 해서 같은 삶일까?

이 영화는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본 작품이었는데, 아쉬운 점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죽음'과 '삶'의 연속성을 다룬 주제는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무엇보다 주인공의 연기에 깊이 빠져들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다만, 잔인한 장면이나 자극적인 요소가 있었음에도 영화 전체적으로 스펙타클한 느낌이 부족해, 잔잔하고 긴 러닝타임이 부담스러울 수 있었다. 지루한 영화를 곧잘 보는 나는 끝까지 집중해서 감상했지만, 같이 본 남자친구는 보다가 잠이 든 것을 보면 호불호가 갈릴 영화이다.

 

잦은 죽음이라도 죽음은 여전히 두려운 존재이며, 기억의 이어짐이 과연 삶의 연속성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던지는 영화였다. 결론적으로 완벽한 영화는 아니었지만, 로버트 패틴슨의 연기와 철학적인 질문들 덕분에 충분히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었다. 개인적인 별점은 3.5/5점.

반응형